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 동학 운동, 동학 혁명)
조선 고종(1894) 때, 전봉준(全琫準)이 이끈 동학당의 교도와 농민이 합세하여 탐관오리의 숙청, 외국 세력의 축출 등을 목적으로 일으킨 운동《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후에 항일 의병 투쟁과 3·1운동으로 계승됨》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 U.K.)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7)’중에서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난 후, 1894년부터 3년간 조선을 여행한 후 버드 여사가 돌아가서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 ours)은 1898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1판까지 찍었다고 한다.
이 책의 머리글에서 그녀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며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시 조선의 사회 곳곳을 훑어 그 면면을 기록한 살아 숨쉬는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동학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을미의병, 아관파천, 독립신문의 창간 등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사건들이 조선을 찾은 한 외국인의 눈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양의 정세에 밝은 외국인이 쓴 이들 기록은 당시 조선이 처한 국내적·국제적 정세와 외교적 문제, 이 사건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다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해준다.
【“관아 안에는 한국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 거기엔 티롤 모자(Tirolean hat)를 쓰고 푸른색이 많은 조잡한 면직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포졸들, 문필가들, 부정한 관리들, 『늘 일이 손에 달린 척 가장하는 전령』들이 있었고, 많은 작은 방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서예 도구를 옆에 놓고 긴장죽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선의 관리들은 살아있는 민중의 피를 빠는 흡혈귀다.”】
비숍은 한국인들이 이주해 가서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원동(遠東)지방의 한국인 정착촌도 방문했다. 여기서 비숍은 새로운 러시아의 조선 정착민을 만난다.
“나는 여행자들이 내가 이곳의 한국 가정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온화한 친절과 더 깨끗하고 더 안락한 편의시설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한국 남자들의 기풍이 미묘하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곳의 한국 남자들에게는 고국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풀 죽은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토착 한국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강인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활발한 움직임이 우쭐대는 양반의 거만함과 농부의 낙담한 빈둥거림을 대체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만다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富農(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행실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했다.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들에 불과했었다.
이들의 번영과 보편적인 행동은 한국에 남아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에게 주었다.”
*만다린(mandarin): 구중국에서 1~9품에 이르는 각급 관료를 일컬었던 말. 중국어의 관[官]에 해당한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낮은 관품에서 출발하여 점차 높은 관품에 오르며 각급 관료층에 충원된다. 'mandarin'이라는 말은 국가의 고문 혹은 장관이라는 뜻의 말레이어 'mantri'가 포르투갈어 'mandarim'을 거쳐 영어로 정착된 것이다. 원래의 어원은 '생각하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어근 'man-'에서 왔다.
수(隋:581~618)는 한의 시험제도를 보다 체계 있게 발전시켜 공식적인 관료의 충원에 이를 이용했다. 또한 지방관리도 지방장관이 아닌 중앙정부가 직접 임명하고 민병(民兵)의 지휘권 역시 중앙정부가 장악한다는 칙령을 만들었다. 당(唐:618~907)은 향교(鄕校)를 설립하여 학자들이 학문을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했다. 당시 고위 관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도를 시험하는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해야 했다. 이 과거제도가 점차 관료충원의 주된 방침이 됨에 따라, 당말에 이르러서는 종래 귀족출신의 관료층이 몰락하고 대신 새로 관료가 된 학자출신들이 권력을 잡았다.
이 학자출신의 관료계층이 썼던 말이 만다린(Mandarin)이라는 베이징 관화(官話)였기 때문에, 그들은 서양에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버드 여사는 이 책의 맨 마지막 文段에서 한국을 떠날 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의 겨울 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 기선인 상 하이行 헨릭 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헨릭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예스러워 흥취 있는 한국의 國旗(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도 서울에 살면서 사람들의 무례함과 도시의 번잡함에 짜증내어 온 많은 서양인들이 떠날 때는 100년 전 버드 여사가 느꼈던 식의 아쉬움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 사이의 이런 괴리는 아마도 한국인들의 人情과 재미있는 성품, 즉 한마디로 定義할 수 없는 생동하고 이중적인 면에 매료된 때문일 것이다.
1897년 67세의 나이로 한국 여행을 마치며 비숍 여사가 남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대결한 상태에서 떠나게 된 것이 유감스럽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 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의 겨울 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출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사벨라 버드 비숍 | 작성자 바보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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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바르텍 (E.V. Hesse-Wartegg)의 <korea, 1895>, <La Corea, 1895>, 오스트리아의 작가 겸 여행
번역본 <조선 1894년 여름, 2012>에 대한 서평(書評)
1894년 6월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은 세계 여행 도중 조선에 들른다.
1894년은 조선에서 격동의 시기이자 일제강점기를 앞둔 정체된 시기였다.
1월은 동학혁명, 6월은 청일전쟁, 7월은 갑오경장, 푸른 눈의 이방인은 조선에 대한 소감을 솔직하게 기술한다.
한일합방조약을 맺기 16년 전이지만 일제는 이미 조선을 야금야금 침략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살고 있음에도 조선인과 일본인은 피하고 증오한다. 작고 단단하며 잽싼 일본인과 달리 어두운 피부의 건장한 조선인은 확실히 구별된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주변을 순찰하고 활보를 하고 다녀도 조선의 농부들은 밭에서 평화롭게 일한다. 하긴 왜 그런 걱정을 하겠는가? 일본군보다 조선 정부가 더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데 조선인은 관리들이 도둑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애써 돈을 모아봤자 이들에게 강탈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생활비와 담뱃값 이상으로 돈을 벌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도시 중에도 서울은 확실히 기묘한 도시이다.
25만 명이나 거주하는 전 세계 대도시 중에서 5만여 채의 집이 대부분 초가지붕 흙집인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로 그대로 하수를 내다 버려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서울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짐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대소변을 직접 거리로 내다 버린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어떤 곳보다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이다. (p.84)
조선 남자의 욕구는 그리 크지 않다. 그저 조그만 집에 소박한 살림 도구면 족하다. 만일 그들이 정말로 많은 돈을 번 다면 곧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관리들이야말로 조선의 몰락과 가난함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니, 그들로 인해 조선은 이윤추구와 노동의욕, 모든 산업까지 질식되었다. 남자들은 하루종일 곰방대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닥거리거나 낮잠을 잤다. 남자들이 집 앞에서 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고 노는 동안 여자들은 집 안이나 마당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면 이미 조선의 여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p.201)
조선의 남녀는 다른 어떤 나라 사람보다 담배를 많이 피운다. 잠자거나 밥 먹는 때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담배를 많이 피운다. (p.87)
[바르텍은 조선의 행정력과 산업도 꼬집었다.]
조선의 정부는 전국의 인구를 823만 명이라고 공식 집계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 (p.300)
조선인들은 지붕에서 짚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손으로 만든다. 조선인 모두가 로빈슨쿠르소의 삶이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조선에서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p.295)
이곳에 장인들은 광석을 캐는 일까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모두 하는데, 형편없는 도로를 통해 지게꾼에게 품삯을 줘서 운반시키는 비용이 엄청나게 직접 채굴한다. 조선인은 분업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부패와 약한 군대도 지적한다.]
조선의 사법 조직은 문서상으로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백성을 조직적으로 약탈하고 억압하는 도구였다. 수령은 행정권과 판사 역할까지 겸하는데 이때도 아전이 작성한 문서를 대충 보고 처리하는 수준이다. 재판에 필요한 것은 아전의 언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의 양이었다. (p.255)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도 매우 정직하다. 절도와 강도는 비교적 드물며, 살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5년간 전체 구역에서 살인은 두 건밖에 없었다. (24쪽)
상당수의 국민이 글자를 쓸 줄 아는데, 이는 예를 들어 이탈리아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212쪽)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조선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들은 조선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음에도 비교적 교육을 잘 받았고 영어를 잘 구사했다. (218쪽)】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이웃인 잽싸고 기민한 일본인들처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더라도, 한때 이들의 군주국이었던 중국보다는 훨씬 빠를 것이다. (232쪽)】
[출처] '조선, 1894년 여름' - 헤세 바르텍 | 작성자 바테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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